왜 예수만이 길인가?
본문: 행4:12
세상사람들은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예수가 뭐 그리 특별한가?” “왜 그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특별한 길인가?” “예수를 믿어야만 천국갈 수 있다니, 기독교인들은 너무 독선적이지 않는가?” “등산로는 여러 개이지만 정상은 하나이지 않는가?”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편협하고 독단적이고 속 좁은 사람들이라고 비난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주장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이 기독교를 세상 종교 가운데서 매우 독선적인 종교로 내비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어떤 믿음 없는 신학자들은 비난과 오해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나온 신학풍조가 ‘다원주의’입니다. 구원의 길은 여럿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비난과 오해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의 비난을 피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자, 이러한 다원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먼저, 예수님만이 하나님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은 그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낸 컨셉(개념)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주장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획기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획기적입니다. “내가 가르치고 전하는 내용이 진리다”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진리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격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선포한 이는 예수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습니다. 이러한 획기적인 주장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오늘 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베드로가 어떻게 이런 주장을 담대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 주장이 베드로가 지어낸 주장일 수 없는 것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교육받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때 독실한 유대주의자였던 바울 역시 같은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한 번 생각해보세요.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죽이던 철저한 유대주의자였던 그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주장을 스스로 고안해낼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주장을 유대인들이 창안해내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유대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입니까?
첫째,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3장을 보세요.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나님과 분리, 타락,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시 관계를 회복시킬 구세주,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다른 사람이 아닌 아담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되는 세대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말씀하여 주신 바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미리 예고하신 대로 보내주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길을 통해 하나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고되신 분이 예수님 외에 달리 누가 있습니까? 그리고 예고된 대로 오신 분이 예수님 말고 누가 있습니까? 그래서 자기 외에는 결코 하나님께 갈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한 사람이 나사렛 예수 외에 누구였습니까? 내가 곧 ‘그 길’이라고 담대하게 선포한 분이 예수님 외에 역사상 누가 있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만약 다른 길을 통해서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결코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은 오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니 오시지 말아야 했습니다. 다른 길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다른 길이 있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큰 혼란만 가져다준 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값을 대신 지불하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이외에 그 어떤 종교에서도 대속의 교리는 없습니다! 어느 누가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어느 누가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려 왔고, 그것 때문에 목숨을 내놓겠다고 하였습니까? 기독교 외에 어느 종교에서 값없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가르쳤습니까? 은혜의 교리가 기독교 외에 어느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까? 구원이란 말 자체는 인간 편에서는 결코 길이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밖에서 와야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큰 실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결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은 오직 하나님만이 여실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서 세상과 화목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진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만들 수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인간 편에서 있다면 예수님은 오실 필요도, 죽으실 필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다른 길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셋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도와주실 분이 아직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는 죽은 자를 통해서 도움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공자, 석가모니, 모하메드는 다 죽었습니다! 그들은 다 무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그들의 무덤에 순례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의 무덤을 숭배하고 기립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더 이상 예수님의 무덤을 숭배하거나 기리지 않습니다. 무덤의 위치도 관심이 없습니다. 창시자의 무덤이 없는 종교는 기독교뿐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아직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모든 자들을 능히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요?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을 결코 살릴 수 없습니다. 오직 산 자만이 살릴 수 있습니다. 죽은 자들은 산 자에게 진실한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산 자만이 산 자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지금 여러분은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은 자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결코 죽은 자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은 자는 나를 결코 도와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지금도 살아계신 분에게만 저는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친아버지’(아빠-아람어)라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었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용어인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나의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역사 중에서 최초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교회들에게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종교가 기독교 외에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아빠’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냉철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어느 종교에서 하나님과의 이같은 친밀한 관계를 약속해주고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으로 가능합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약속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예수님만이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불교나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왜냐면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에 있어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결코 기독교인의 주장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사람 편에서 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면 결코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결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정확히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안내하십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평화)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는 삶, 그분의 친밀함 속에 거하는 삶-바로 이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내 힘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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