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P 이야기

라면 한 그릇에 발견한 행복

등불지기 2013. 11. 20. 16:23

 

 

지난 주에 결혼기념일이 있었습니다. 생일이니 기념일이니 하는 단어는 없이 자란 제게 원래부터 익숙하지 않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의미를 찾으려다 보니 점점 가까워지는 듯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의미있게 결혼기념일을 보낼까 궁리하고 아내랑 의논도 하다가 결국 결론을 내린 것이 둘이서 함께 라면을 끓여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세 딸들에게 이 계획을 이야기하니 다들 "에이~"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아이들 학교에 보내놓고 아내랑 맛있게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밖에 나가면 사먹을 수는 있지만 별로 먹고 싶은 메뉴가 없습니다. 게다가 날씨도 덥고..

 

아니 이렇게 멋이 없는 남편이 다 있나 싶겠지만 사실 이 계획은 제 아내가 먼저 제안한 것입니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목회자 집안에서 자란 아내 역시 기념일에 익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희 부부는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기념일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다고 삐치는 일이 없습니다. 하니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우리들 부부가 즐기는 방법인걸요..아무튼 라면 하나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라면을 맛있게 끓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누군가 함께 같은 음식을 먹고 산다는 것, 그리고 함께 음식을 나눠먹을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라면은 매우 귀한 음식입니다.  오늘 읽은 기사내용인데 한번 보시지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1/19/0200000000AKR20131119196700099.HTML?input=1179m

 

 

중앙아프리카 라면 이야기 정도는 아니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도 라면은 매우 귀합니다. 저의 집에서 라면은 커보드cupboard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는데요..수시로 열어서 몇 개나 남아 있나 살펴봅니다. ㅎㅎ 혹시나 다 떨어지면 구하려 자동차로 2시간이나 운전해야 살 수 있습니다. 프레토리아나 요하네스버그같이 큰 도시에서 사는 한인들은 라면을 쉽게 구할 수 있겠지만 시골에 사는 저로서는 라면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가게는 커녕 중국가게도 없습니다.

 

라면..예전에 주일날 교회에서도 자주 먹었고 학생 성가대 연습할 때도 수련회할 때도 자주 먹었습니다. 전방에서 군복무할 때는 항상 신라면만 먹었습니다. 힘들게 행군하고 밤늦게 부대로 복귀하면 취사병들이 항상 신라면을 끓여주었습니다. 매콤한 신라면이 한국사람의 입맛에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와서 살다보니 체질이 바뀌었는지 제 몸이 매운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먹을 때는 좋은데 먹고 나면 꼭 화장실을 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맵지 않은 순한 라면을 좋아합니다. 매운 라면을 누가 주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줍니다. 받는 사람은 무척 좋아하지만 저는 주면서 씁쓸하다는...^^

 

지금 저의 집에서 라면은 자주 먹지는 못하고 날이 더워 아내가 음식을 만들기가 귀찮아지는 그런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런 비상사태(?)를 대비해 조금씩 비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말이나 혹은 주일 예배를 드리고 집에 돌아올 때 가끔 아이들과 함께 먹습니다. 저의 가족이 모두 다섯 식구인데 두 개 정도 끓여서 조금씩 나눠먹습니다. 그리고 찬 밥을 말아서 국물까지 싹 비웁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을 끓이려면 치즈를 한 두 장 넣어주면 아주 좋아합니다. 아프리카에는 짜장면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짜파게티 같은 것도 아이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라면 하나에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흔하면 귀한 줄 모르고 또 감사할 줄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귀하니까 감사할 줄도 아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 이렇게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이 널려 있는데 우리가 많은 것을 놓치고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행복해지려면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우려면 귀한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늘 만나는 사람들마다 귀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우리가 마시는 물과 공기..다 귀하고 소중하며,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도 다 귀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의 조건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흔하기 때문에 우리는 귀한 줄 모르고 또 감사할 줄도 모릅니다. 감사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면 불평 불만이 가득하게 되고 결국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지 모르겠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늘 보는 것, 늘 만나는 것이지만 한번쯤 '이게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라고 물어보십시오. 아니면 '사막에서 혼자 살야야 한다면?' 이라고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평소 별 것 아닌 것이 별 것이라고 여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라면 한 그릇에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발견할지 잘 모르겠다면 아프리카로 오십시오.

여기서 살다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저절로 배울 수 있습니다.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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