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묵상

풍성한 삶의 비결II

등불지기 2013. 11. 24. 08:52

 

 

풍성한 삶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가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그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삶은 예수님 자신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력이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거슬러 갈 줄 아는 능력, 시류에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역행할 줄 아는 능력, 고정되어 썩는 것이 아닐 계속 움직이며 변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의미할 것입니다. 재정이란 영역은 그 생명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재정과 타협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재정을 다스리며 통제할 수 있다면, 만일 궁핍해도 자족하며 기뻐하며 감사할 줄 안다면, 만일 풍성한 재정에도 교만하지 않고 늘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며 베풀어주는 삶을 지속할 수 있다면, 남들보다 많이 가졌다고 우쭐거리지 않고 계속 흘려보내며 다른 사람을 윤택하게 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 생명력 있는 삶, 풍성한 삶이 아닐까요?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은 결코 대충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계획하고 준비하고 계산하고 정산하고 또 수정하는 일을 반복하는 치밀하여 치열한 일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제 책상 위에는 항상 전자계산기가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환율을 체크하고 제 다이어리에 환율변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내야 할 월세, 세금 등도 항상 기록하고 있고, 지출할 때마다 지출내역을 항상 작성하고 있습니다. 5년 전만해도 처음에는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지금은 꽤 익숙해졌습니다. 제 딸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 중에 Accounting이란 과목이 있습니다. 회계장부를 작성하고 계산하는 그런 과목입니다.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 '회계학'을 얼마나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나라에서는 아주 어릴적부터 회계장부를 가르치고 창업을 격려하고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는 것을 보고 나름 큰 인상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풍성한 삶은 실제적이어야 하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산budget을 세우고 결산을 하며 피드백을 통해 순간순간 수정해나가는 등 숫자와 씨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흑인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주로 사역을 하면서 놀라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흑인교회 중에서 예산을 세우는 교회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산이 없다는 것은 가이드가 없이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비단 교회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가정도 개인도 예산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산을 세운다는 것은 재정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것이고 물의 흐름을 통제하는 수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산을 세울 때 기본 개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에게 먹을 양식seed to eat과 심을 양식seed to sow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농부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농부의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씨앗을 내려주시고 때를 따라 비를 내려주시며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농작법칙에 따라 살 때에 가장 풍성한 삶을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산을 세울 때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심을 것과 먹을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참 농부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심을 양식(종자)을 먹어치우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종자는 보호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산의 제일 원칙입니다. 그리고 먹을 양식과 심을 양식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심을 것을 먹어버리거나 심는 것에 비해 먹는 것이 많으면 오래 가지 않아서 빈곤하게 될 것입니다. 풍성한 삶을 살려면 덜 쓰고 더 저축하고 더 투자해야 합니다. 저축과 투자는 어떻게 다를까요? 종자를 무조건 다 뿌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축해야 합니다. 다음에 뿌릴 때를 대비해서 비축해두는 것입니다. 투자는 심는 행위입니다. 예산을 세울 때 투자항목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할 때 하나님의 것으로 투자하느냐, 내 것으로 투자하느냐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어떻게 언제 투자할 것인지(심을 것인지) 잘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어릴 적부터 재정관을 바로 가르치고 어릴 적부터 저축과 투자개념을 잘 가르치고 실습하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가정교육이라고 봅니다.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어야 충동적인 집행을 절제할 수 있고 혹은 너그러이 베풀어주거나 후하게 섬기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지금 개인예산personal budget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성경적이며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집행되고 있습니까?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밭에, 적절한 씨앗을 심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지침이 바로 예산budget입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마이너스 통장 역시 주의해야 합니다. 할부금으로 어떤 것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예산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 가이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산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신용카드나 마이너스통장은 영혼의 자유를 뺏겨버리는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으나 최근 5년 동안 몇 번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몇 만 원 정도의 아주 적은 소액결제일 뿐입니다. 왜냐면 제 예산에는 신용카드를 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저는 제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너희들이 아빠 엄마를 본받기를 바란단다. 아빠 엄마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빚을 지지 않고 살았다." 부모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다는 말은 너무 심한 말입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먹여주시고 공부시켜주시는 그 모든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과장된 말이지만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적어도 결혼하게 되면 부모를 떠나는 것이므로 결혼할 때부터는 정서적 경제적 자립을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가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전세자금을 적금을 들어서 다 갚아드렸습니다. 그 외에 부모님께 나름대로 용돈을 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랑의 빚은 도저히 갚을 수 없지만 적어도 결혼 이후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식으로 부모님을 도와드렸지 재정적인 도움을 기대하지도 요청하지도 또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어느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적도, 어느 개인에게서 돈을 빌린 적도 없습니다. 빚이 없다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신앙생활하는데 보이지 않지만 아주 큰 담대함을 주는 원천이 됩니다. 빚이 있는 선교사들이 꽤 있는데 가만히 관찰해보면 마음이 눌려 있고 인간관계에서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빚은 자유를 앗아갈 뿐만 아니라 마음을 좁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후하게 베풀어주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우선 빚이 없어야 합니다.

 

 

 

배고파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도 아무 빚을 지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빚이 있을 경우, 혹은 자의반 타의반 빚이 생겼을 경우 빚을 청산하는 것을 예산의 최우선 항목에 배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투자sowing와 빚청산clearing 둘 다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빚을 갚는 일에만 집중하다보면 투자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심을 타이밍을 놓치면 또 다른 빚에 시달릴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빚청산 문제를 위해서라도 예산을 세우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최고의 투자는 단연 사람에 대한 투자입니다. 교육에 대한 투자역시 순도가 높은 투자입니다. 특히 고난 중에 있는 믿음의 가정들에게 베푸는 선행은 주님이 큰 상으로 갚아주시는 투자입니다. 복음을 위해 투자하는 것 역시 최고의 투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되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여지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 때 다시 되돌려 받을 기대를 한다면 이것은 효과적인 투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걸기보다는 100% 하나님께만 기대를 걸고 투자하는 것이 믿음으로 심는 행위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베풀어주었는데 자신의 선행을 알아주지 못하고 감사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비록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온전히 상주실 것을 기대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지혜롭게 씨를 뿌린 것입니다. 농부는 좋은 땅에 좋은 씨를 뿌리고 길이 참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돈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돈을 보기를 종이조각처럼 보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소망에 돈이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돈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보다 돈을 사랑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오히려 더 정직한고 진실한 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 생활속에서는 "돈 때문에 못해"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어" "돈을 벌 때까지는" 등의 말로써 자신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돈의 종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돈이 지금 나에게 'NO'라고 말할 때에도 우리는 오히려 돈을 향하여 'YES' 라고 말할 수 있ㅇ야 합니다. 돈이 나에게 명령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오히려 돈을 향해 꾸짖을 줄 알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돈이 명령하는 것에 따라 가는 것을 의미하고, 돈이 위협하고 협박하는 말에 쉽게 움츠러들고 낙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돈의 위협에 낙심하거나 위축된다면 '아 지금 내가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틀림 없습니다.

 

 

 

재정적으로 풍성한 삶을 '재정적인 자유를 누리는 삶'으로 표현해도 될 것입니다. 재정적인 자유를 저는 앞에서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빚을 지지 않는 능력, 둘째, 너그러이 주는 능력..이번에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해보려고 합니다. 재정적인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확신입니다. 욥은 고백하기를 적신으로 와서 적신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벌거벗은 몸으로 이 세상에 와서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는 벌거벗은 몸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함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땅의 재물과 물질에 집착하는 마음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선교사로서 저는 이렇게 제 자신에게 적용하고 싶습니다. 선교사로서 파송을 받아 이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 들어왔을 때 저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전세금 2천만원도 부모님께 드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 가지게 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 가져가셔도 제가 잃을 것이 사실상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내가 잃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을 때 얼마나 홀가분한지..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사실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임을 깨닫는 순간 나는 얼마나 행복하며 얼마나 부요한 삶을 살고 있는지..들의 백합화도 솔로몬이 입은 영광보다 더 아름다운 영광으로 옷입혀주시는 하나님의 손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얼마나 자유로운지..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내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주님의 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하게 줄 수 있고 기쁨으로 줄 수 있습니다. 받는 사람이 고맙다고 표시하지 않고 내 성의를 알아주지 못할지라도 조금도 서운하지 않는 것은 내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줄 때는 주는 행위를 즉시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받을 때는 반드시 마음에 새기고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한 일을 행하고 도움을 줄 때에 나의 행위에 그 어떤 의로움도 부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오직 상주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말은 나의 선한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과 상급을 흥정해도 된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급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큰 상급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 때문에 우리는 나의 도움과 베풂을 받은 어느 누군가가 나에게 적절한 보상과 칭찬을 해주지 않을지라도 결코 서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러한 도움을 받을 때에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합니다. 은혜와 덕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심는 것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심는 것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돈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환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땅의 화폐를 하늘의 화폐로 환전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땅의 계좌도 잘 관리해야 하겠지만 하늘의 계좌를 더욱 잘 관리해야 합니다. 지상계좌는 부요하면서 하늘계좌는 빈곤한 인생이 되지 말아아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늘계좌에 풍성한 포인트를 쌓을 수 있을까요? 금방 날개를 달고 날아버릴 재물을 가지고 영원한 영혼을 얻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화폐를 천상화폐로 환전하는 방법입니다.(눅16:9)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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