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P 이야기

선교지에서의 관계문제

등불지기 2015. 1. 25. 19:08

 

 

 

한국에서 선교단체에 몸 담고 있었을 때 관찰한 것이 있었는데 선교지에서 철수하는 선교사들이 재정문제나 기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관계 문제 때문에 사역을 접고 본국으로 철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를 선교지에서 몰아내는 것이 현지인들도 아니고 재정부족도 아니라 다른 동료선교사들과의 관계문제였다는 것은 그만큼 관계문제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선교사의 문제만 아닙니다. 열심히 교회 출석하며 봉사하던 교인이 어느날 갑자기 교회를 떠나겠다고 선언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도 다름 아니라 관계문제 때문입니다. 그만큼 관계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채 뒤엎어놓을 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이제 겨우 7년차에 불과한 선교사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저 역시 이러한 관계의 무시무시한 파워를 잘 느끼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에너지를 앗아사고 때로는 선교지에서 철수하고픈 마음까지도 불러일으키는 관계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최근 저의 큰 딸이 이곳 현지 대학교인 University of Pretoria 에 입학하였습니다. 기숙사에 들여보내고 학교에 등록하며 개강준비를 돕느라 최근 조금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기숙사를 가니 여러 인종이 모여 있는데 그래도 아프리카너(남아공 백인)들이 많더군요. 방 하나를 두 명이 같이 나누어 쓰는데 딸의 욺메이트가 키와 덩치가 엄청 큰 아프리카너였습니다. 잘 정착하고 개강준비를 잘 하고 있는지 등등 연락을 주고 받는데 많이 바쁘고 규율도 엄격하지만 재미있다는데 점점 살면서 아프리카너들의 텃세와 차별 등을 겪으면서 힘들어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중1의 나이때 이곳에 와서 현지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말도 안되고 그래서 어리버리하게 보였을 딸아이가 겪었던 관계싸움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많이 울기도 하고 했는데 딸아이를 정말 힘들게 한 것은 아프리카너들의 텃세와 차별보다 사실 같이 한 학교를 다니는 한국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때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그 아이들이 들어갈 대학교가 아니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결심했고 결국 그 결심대로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관계문제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비단 선교지에서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관계문제를 잘 다루는 것은 가장 높은 지혜의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를 계속 괴롭히며 따라다닌다면 그것은 내 안에 해결하고 치유해야 할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는 뜻입니다. 관계문제를 다루는 기본적인 원칙 중에 하나는 나의 내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외로움의 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추방당하여 살아오면서 사람은 근원적인 고득을 앓고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외로움 때문에 근본적인 관계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오래 살게 되면서 같은 한국사람이 그리워지게 됩니다. 언어의 스트레스를 받다가 한국사람을 만나면 수다를 떨면서 언어의 스트레스를 단번에 날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함정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어떤 기대를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 말입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는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인이 원수가 되기 쉬운 것입니다. 모두 언어와 감정과 재정 등 모든 면에서 부족과 결핍의 상황에서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어떤 기대를 가지고 대하게 되고 그것은 기대가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재정결핍, 애정결핍, 고독과 외로움, 언어적 스트레스 등을 겪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아무런 기대와 조건을 내세우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 사는 선교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언제나 무한하신 하나님의 자원에 접속한 상태로 지낼 줄 아는 능력입니다. 외로워도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며, 재정적으로 부족하여도 하나님 안에서 항상 감사할 줄 아는 경건의 능력이야말로 모든 관계싸움을 끝내는 비밀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나는 언제든지 홀로 설 수 있고, 혼자서 자족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광야에서 움막을 짓고 살아도 즐거워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이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으로 믿을 것이고 그래서 나와 친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기대심리를 가지고 나를 잘 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만약 내가 그들이 가진 기대를 잘 채워주지 않으면 그들은 지킬과 하이드처럼 나에 대한 태도를 돌변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거절'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혜롭게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그들과 나를 동시에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와 친하게 지내기를 원하지만 나는 그들과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서로의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례히 행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저는 교회에서 청년부 사역을 하면서 그런 청년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너무 착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하여서 교회 어른들이 너무 사랑하고 아껴줍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 '부서'에 끌어당겨서 이런 저런 일들을 맡깁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일들을 주님이 맡기신 일이라고 믿고 죽도록 충성하지만 결국 나중에 교회에 대한 회의에 사로잡혀서 신앙 자체를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순종을 잘 못 가르친 경우이고, 순종을 악이용한 경우입니다. 교히에서는 순종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거절을 가르쳐야 합니다. 무조건 YES라고 대답할 것을 가르쳐서는 안되고 어떻게 NO할 것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쳐야 하고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아닌 것에는 아니라고 대답해야 하고, 진리가 아닌 것에는 항거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선교지에서의 관계문제도 그렇습니다. 남들이 나에게 부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거절하는가를 배우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고 그들도 보호하는 지혜가 됩니다. 서로의 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거절하는 것이지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 거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욱 조심하고 무례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한분 만으로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고 만족하며 기뻐하는 것, 이것이 선교지에서 꼭 필요한 경건의 능력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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