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경건의 능력을 오해합니다. 경건할수록 기도응답을 잘 받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면 역사가 쉽게 일어나고, 교회도 부흥성장하고, 사업도 잘 되고.m, 그러니까 경건을 추구해야 한다고...교회들이 그렇게 가르친 영향도 큽니다. 그것이 경건생활이고 경건의 전부라면 더이상 기독교와 상관이 없습니다. 경건godliness은 원하는 바를 얻게해주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귀한 가치입니다.
그러면 경건godliness이란 무엇일까요? 간단히 정의하자면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입니다. 아가서에서 술람미 여인이 세 단계에 걸쳐 사랑에 빠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첫째, 그가 내게 속했다는 즐거움, 둘째, 내가 그에게 속해있다는 즐거움, 셋째, 그가 나를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즐거움..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합니다. 결혼하기 전 배우자와 사랑에 빠졌을 때 즐거움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은 기본적으로 사랑에 눈먼 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즐거움, 사랑에 빠졌을 때 찾아오는 희락의 감정이 기본입니다.
이 즐거움은 그 자체로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필요를 채움, 혹은 문제 해결, 혹은 목표달성을 위해 경건을 흉내내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성경읽고 봉사하고 하는 것이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 아닌 어떤 목적을 이루기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교묘하고도 위험한 유혹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유혹에 빠지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욕심 혹은 결핍감 때문입니다. 뭔가 부족함을 인지하고 그로인한 수치심을 제거하기위해 경건생활에 몰두합니다만 그 마음에 전혀 즐거움이 없습니다. 이런 경건은 겉으로 화려해보일순 있어도 속에는 전혀 능력이 없습니다.
올바른 경건은 자족하는 마음contentment 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더 가지려고 애쓰지도 덜 가졌다고 속쓰리지도 않으며 주어진 것이 내게 과분한 선물인 줄 알고 감사하며 누릴 줄 알고 나눌 줄 아는 여유가 있을 때 경건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합니다. 우리는 모두 벌거벗은 몸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이 세상을 떠납니다. 가져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다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잠시 누렸다가 내려놓고 떠납니다.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다고 여기고, 지금 당장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이것만으로도 과분하여 내잔이 넘친다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없이 하나님을 향한 그 어떤 경건의 노력들도 빛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무엇인가 이뤄보려고, 무엇인가 해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경건의 능력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김광락선교사올림
'내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0) | 2018.03.13 |
---|---|
누룩과 천국 (0) | 2018.03.09 |
행복한 교회의 특징 (0) | 2018.03.08 |
절약하는 것과 인색한 것은 다르다 (0) | 2018.03.06 |
재정싸움(2) (0) | 2015.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