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P 이야기

선교, 선교적인 삶, 선교를 위한 삶

등불지기 2012. 8. 23. 17:32

 

선교, 선교적인 삶, 선교를 위한 삶

 

어떤 분이 선교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하신 말씀을 인용해봅니다. (제 페이스북에 사랑하는 어느 형제님이 올린 글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과 직장에서 일하는 것과 선교지에서 가난한 백성들을 섬기는 모든 것이 우리의 선교입니다. 해외 선교지에 있다고 선교사가 아닙니다. 선교는 지역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적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진 모든 사람과 땅과 현장이 우리의 선교지입니다. 이곳에 성령을 의지하여 온전한 복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씨름하는 사람이 선교사입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희년의 정신이 우리의 선교 전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선교전략이고 통합선교입니다.

 

선교의 개념을 지역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적 개념으로 정의하는 것에 대해 그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고 또 "목회적으로" 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의 관점에서 볼 때 선교의 개념을 다소 제한하지 않았나 싶어 코멘트를 해볼까 합니다. 이런 식의 가르침을 한국교회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개념에 있어서 올바른 정의를 제시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선교요,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선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해외 선교지에 있다고 선교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씨름하는 모든 사람이 선교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선교정의에 문제가 있는 것은 선교를 오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위에서 말씀하신 부분은 선교에 대한 정의라기 보다는 선교적 삶에 대한 정의입니다.  

 

저는 선교와 선교적 삶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선교적 삶과 선교를 위한 삶도 구분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의 생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1. 선교

선교가 무엇인가? 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여러가지 개념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어떤 분은 선교는 지역적 개념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저는 정반대로 선교는 지역적 개념이 크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선교는 지역을 넘어가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은 '타문화권'을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지역이 다르다는 것은 언어, 습관, 사고방식, 세계관, 문화, 역사와 전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약 위에서 말한 것이 진정한 선교의 개념이고 정의라면 타문화, 타지역에 대한 관심은 줄어드러나 반감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교'는 언제나 지경을 넘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고 하셨을 때 지역개념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을 때 지역개념이 아니고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사도행전을 읽어보십시오. 초대교회, 그리고 특히 복음을 향한 사도바울의 열정과 헌신을 '지역'이 아니고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복음을 알지 못하는 지역으로 나아가는 희생과 용기가 없다면 어떻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끝이 올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재림은 땅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지역적 개념의 선교가 완성되기 전에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선교가 지역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적 개념이라면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누가 할 것입니까? 선교가 다만 존재적 개념이라면 예수님의 재림은 누가 예비할 것입니까? 선교는 복음들고 산을 넘는 것입니다.

 

2. 선교적인 삶

따라서 서론에서 인용하여 소개한 정의는 "선교"에 대한 정의라기보다 "선교적 삶"에 대한 정의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적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선교적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반적 삶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이 구현되는 곳이 어디든, 가정이든, 직장이든, 학교이든, 심지어 교회이든 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보내심을 받은 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을 그곳으로 보내신 분의 의도에 따라 살아야 할 거룩한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선교와 선교적인 삶을 구분하려 합니다. 그러니까 해외 선교지에 파송되어 나와 있어도 선교적 삶을 살지 못하는, 다만 이름뿐인 선교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선교적 삶을 살지 않는 이름뿐인 선교사들로 인해 선교가 욕을 먹고, 주님의 이름이 선교지에서 욕을 먹습니다. 반대로, 학교나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어디든 선교적 삶을 멋지게 사는 실제적인 선교사도 많을 것입니다. 선교적인 삶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 여기며 자신을 보내신 이의 의도와 목적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이 없다면 해외 선교지에서 살고 있어도, 선교사라 이름은 갖고 있어도 선교적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없겠지요.

 

3. 선교를 위한 삶

저는 또한 선교적인 삶과 선교를 위한 삶도 구분합니다. 선교를 위한 삶이란 타문화권에 있는 영혼들, 복음이 뿌리내리지 못한 지역에 사는 언어집단(종족)에 어떤 모양이든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혹은 참여하려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선교적인 삶을 훌륭하게 산다고 해서 다 선교를 위한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직장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충실하게 살지라도 타문화권 영혼들을 향한 관심이 없을 수 있습니다. 선교를 위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먼저 그 마음속에 타문화권, 그리고 잃어버린 족속에 대한 관심과 부담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모양이든 참여하려는 삶의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산다고 다 선교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타문화권에 대한 관심, 중보기도, 후원, 동원하거나 장단기적으로 직접 참여하는 삶의 모습이 있을 때 선교를 위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선교사

넓게는 세상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범위한 정의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선교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적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지만 선교사의 정체성을 명확히 가지고 사는 것은 특수한 것입니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선교사로 부름받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선교사의 정체성을 가지려면 다음의 네 가지 요소가 분명해야 합니다.

 

첫째, 파송받은 자

선교사는 자신이 파송을 받은 자라는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자신이 어떤 언어그룹으로, 어떤 지역으로 파송을 받았는지 확실해야 합니다. 선교사는 특정한 지역 안으로 파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지역에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둘째, 파송한 자

선교사는 반드시 자신을 파송한 자가 누군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파송한 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선교사는 자신을 파송한 자의 이름과 권위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은 자신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시면서 선교를 지상명령으로 주셨습니다.

 

셋째, 파송받은 자의 특권과 책임

선교사는 특궈과 동시에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선교사의 특권이란 보냄받은 자로서 보낸 자의 이름을 대표하는 것이며, 보낸 자는 보냄받은 자가 그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선교사는 자신의 삶에 대해 필요한 것을 보낸 자로부터 공급받을 특권이 있습니다. 물론 특권만 아니라 보낸자의 의도를 따라 살지 못할 때 문책받을 것입니다. 만약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면 학교에 보낸 이로부터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어느 나라에 파견되었을 경우 파견한 국가가 대신 그 외교관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외교관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자신의 생활에 대해 염려한다면 그를 파견한 국가가 잘못하거나 혹은 그가 실은 외교관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 생활에 염려하는 자는 파송받은 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넷째, 사명

선교사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학교, 직장, 가정, 교회가 내 선교지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대하시는 그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어야 하며, 그 일을 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하나님께 훈련을 받은 것이며, 그 일을 즐겁게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신령한 은사를 받은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일에 대한 명확한 지식이 없다면 '선교사'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컨데..

선교와 선교적인 삶은 다릅니다.

선교적인 삶과 선교를 위한 삶 역시 다릅니다.

 

선교지에 있다고 다 선교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선교적인 삶을 산다고 선교를 위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 했다 못 했다 평가하고 상벌을 주실 분은 우리 주님뿐이십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선교적인 삶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선교를 무시하거나, 선교를 위한 삶을 등한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에 대해서 모르고, 선교를 위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선교를 좁은 개념의 울타리 안에 집어넣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선교와 선교적인 삶은 다릅니다.

선교적인 삶과 선교를 위한 삶 역시 다릅니다.

 

2012년 8월 23일

South Africa,

김광락 선교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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