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 68

참고문헌

참고문헌  강성열, 기독교 신앙과 카오스이론, 대한기독교서회, 2018고재현, 양자역학 쫌 아는 10대, 풀빛, 2023고석규, 역사속의 시간 시간속의 역사, 느낌이 있는 책, 2021곽영직, 양자역학으로 이해하는 원자의 세계, 지브레인, 2017귀도 토넬리, 제네시스, 김정훈 역, 2024김갑진, 마법에서 과학으로: 자석과 스핀트로닉스, 이음, 2022김상욱, 김상욱의 양자공부, 사이언스북스, 2023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24김송호,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물병자리, 2016김유신, 양자역학의 역사와 철학, 이학사, 2016김재권, 신을 제외하면 나는 합리적일 수 있을까, 연세대출판문화원, 2022다카미즈 유이치,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김정환 역, 북라이프, 2024레너드 서스킨드..

책을 쓰고 나서

에필로그 저는 책을 위한 원고를 탈고하기를 마치자마자 그 동안 미뤄왔던 별보기 캠핑을 떠났습니다. 자신이 수집한 보석을 남몰래 보면서 행복해하는 어느 수집가처럼 저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우주에 흩뿌려 놓은 보석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을 나타냅니다. 복잡한 도시 생활 속에서 답답할 때면 텐트와 망원경을 가지고 광해(light pollution)가 적은 곳으로 훌쩍 떠납니다. 별들을 관찰하는 일은 제게는 가장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 그런데 광해가 심한 도시에서도 유난히 잘 보이는 별들이 몇 있습니다. 그중에 목성과 토성은 매우 밝은 별입니다. 그런데 사실 목성과 토성은 밤하늘에 매우 밝게 빛나지만 사실 별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별(star)이 아니라 행성(pl..

너를 이해함으로써 나를 이해한다

나는 신학을 이 시대가 접근하여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이 시대의 언어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시대가 보고 있고 누리고 있는 20세기와 21세기 현대문명(예를 들어, 통신, 컴퓨터, 휴대폰, 가전제품을 가능하게 만든 반도체 산업, 핵에너지 등)은 모두 양자역학의 발달로 생겨난 열매들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양자역학을 몰라도 양자역학의 열매를 즐기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조금씩 양자역학에 대해 알아 가기 시작하고 있다. 언젠가는 양자역학이 모든 사람의 상식이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양자역학의 언어로 다시 쓰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그래서 최대한 선입견이 없이 양자 물리학을 살펴보기로 했다. 최대한 넓게 다..

교회: 빛의 공동체

교회: 빛의 공동체 교회는 어둠에서 빛으로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ekklesia) 즉, 어둠의 나라에서부터 불러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빛 아래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교회라 한다. 교회는 빛의 운반자이며 빛의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의 대표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교회는 세상 가운데 빛을 선포하기 위해 세워진 기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빛이다. 어둠을 비추는 빛이다. 교회는 빛을 만들어 내는 곳이 아니라 빛을 운반하는 곳이다. 빛을 비추는 교회가 자기 기능을 잃어버리게..

하나님의 선교

선교하는 하나님 복음주의적 신학의 마지막 단원은 언제나 선교에 관한 진술이다. 기독교 선교학(Christian missiology)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는 이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선교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 로고스(Logos)로써 창조하셨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이자 목적이며 근본이시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나 부모는 그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모든 파티를 준비한다. 그것이 자녀의 기쁨을 위한 것이고 동시에 부모 자신의 기쁨이기도 하다. 첫째 날 모든 만물의 근본이 되는 빛을 창조하셨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첫째 날 만드신 빛으로 되어 있다. 모든 만물은 빛을 품고 있고 빛을 방출하고 있다. 실체를 반영하는 거울처럼 만물은 창조주의 힘과 거룩과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있었..

설교

기독교에서 설교행위는 매우 특별하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택한 백성을 설교라는 행위를 통해 부르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설교는 “양 떼를 먹이는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는 교회의 모든 예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서가 된다. 설교가 살아 있으면 교회도 살아 있게 된다. 설교는 교회에 생명을 불어넣는 수단이며,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설교’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설교행위보다 설교자의 정체성이 우선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선포자’로 세우심을 받은 자로서 소개하고 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 1:11) 우선 설교는 재판정에서 하는 증언(testimony)이다. 그..

깨달음과 거듭남

기독교에서 ‘믿음’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과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계시’의 사건과 계시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가, 그리고 ‘믿음’의 대상에 대한 명확한 구분에 있다. 우선 믿음의 대상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과학자들은 실험과 방정식으로 검증된 이론체계를 ‘진리’로 믿는다. 그들은 사물의 이치를 잘 설명하는 어떤 이론이 여러 실험(사고실험도 포함)으로 증명되었을 때만 그것을 ‘진리’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은 명상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을 때 ‘진리’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매우 특이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을 발견했을 때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자연법칙이나 사물의 이치도 아니라 인격에 대한 ‘깨달음’이다..

기독교 생명윤리

생명에 관한 기독교적 관점은 ‘피’에 관한 교리가 핵심이다. 피에 관한 율법의 조항은 매우 엄격하다. 지금도 유대인의 랍비들은 피에 관하여 극도로 예민하여 도축에 쓰이는 칼을 자세히 조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피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구약의 율법에는 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0-11)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적으로 안다.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영혼 전체를 진동시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영(바람)이신 성령께서 듣는 자들을 진동시켰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은 쉽게 하나님의 말씀이란 빛의 강력한 파장을 경험할 수 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하여도 스스로의 힘으로 그러한 진동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거듭난 이후 하나님의 빛 가운데 살아가면서 이러한 경험을 언제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영은 믿을 때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이후에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영혼을 진동시키시는 분이다. 성령의 진동시키심을 ‘기..

내일일을 자랑하지 말라

내일 일을 자랑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가? 양자역학 원리 중에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이 있다. 양자세계에서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자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지닌다. “코펜하겐 해석은 여러 색상의 빛이 혼합되어 흰색이 되듯 입자의 특이성도 섞여서 스핀이 업도 다운도 아니거나, 여기에도 저기에도 없는 것과 같은 ‘중첩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첩은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하이젠베르크는 말했다. [입자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떠한 존재나 사실이 아닌 확률과 잠재력으로 세상을 구성한다.]” 어떤 것의 위치와 운동량을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고전역학의 입장과 달리 양자역학은 어떤 것이 중첩상태로 있다가 관측을 하는 순간 입자의..

안다는 것

‘안다는 것’의 의미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을 구분하는 것은 ‘측정’의 문제이다. 고전역학에서는 측정문제가 없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양자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측정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측정이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측정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 이 모든 것으로부터 내부에서 진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을까? 측정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부터 ‘양자역학의 해석’이라는 분야가 생겨났다…. 즉,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실제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은 ‘보는 것’ 즉 ‘관측’이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 혹은 믿고 있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사실 내가 하나님을 보고(관측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퀀텀시크릿

퀀텀 시크릿(Quantum Secret)에 관하여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해 성공과 출세에 적용하는 가르침이 유행하고 있다. 이른바 ‘끌어당김의 법칙’을 적용하여 부와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은 토마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관찰’이란 행위를 통해 실재가 되듯이 보이지 않는 소원을 실제로 만드는 원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가르침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귀신의 가르침이다. 귀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퀀텀 코칭’이라 불리는 이러한 가르침은 전혀 성경적인 삶이 아니며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결국 마귀에게 종속되는 삶을 살게 할 것이다. 이..

윤회사상

윤회사상에 관하여 모든 것이 원자로 되어 있으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원자의 순환(circulation)을 의미하는 것일까? 불교와 힌두교는 윤회사상을 믿는다. 모든 만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양자역학 원리와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최근 들어 동양철학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원자의 재구성을 결정하는 힘에 관해서 불교와 힌두교는 다르게 생각한다. 힌두교는 어느 초월적 신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에 비해 불교는 좀 더 철학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윤회사상의 증거로 전생에 관한 기억을 그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전생에 대한 기억을 증언하는 그 증언이 과연 참일까? 전생을 기억하는 것이 영혼이 윤회한다는 것의 과학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까? 기독교적 시각에 의하면 전생에 대한 기억은 ‘거짓 영에 의한 속임수’이..

천사들

천사들에 관하여 그렇다면 성경은 천사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천사들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어떻게 존재하며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천사들에 관하여 성경은 자세히 말해 주고 있지 않지만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은 피조물이며, 그들은 영적인 존재로서 불멸이며,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존재들이며, 일부 타락한 천사들이 있었는데 그 우두머리가 사탄(참소하는 자란 뜻) 혹은 마귀(미혹하는 자란 뜻)이며 그를 따라서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수많은 천사들을 ‘악한 영’ 혹은 ‘귀신들’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타락한 천사들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믿게 하며 진리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일을 하는 존재들이다. 골로새서를 보면 1세기에 천사를 숭배하는 무리들이 교회에 영..

성경

성경에 관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관하여 여러 시대를 걸쳐 여러 모양과 여러 방법으로 드러내셨다. 특별히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말하게 하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의 손으로 기록되게 하셨고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명의 인간 저자가 자신의 개성과 경험을 살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하셨고 또 하고 계시는지 기록하게 하셨지만 교리적으로 서로 모순되거나 충돌되지 않도록 세밀하게 간섭하셨다. 양자 물리학자나 천체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단어인 ‘미세조정’(fine tuning) 작업을 통해서 말이다. 이 성경은 ‘과학’이나 ‘철학’의 개념으로 보자면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계시’의 관점에서 볼 때 결코 오류가 없다. 그것을 기반으로 신학체계나..